외로운 남자들의 영화 - HEAT
Gadget 2007. 9. 2. 23:45 |
로버트 드니로의 맹렬한 저 눈빛을 자세히 보면
한 세상 살아가는 남성들의 슬픈 외로움을 읽을 수 있다.
나이가 들수록 어렸을 적 꿈꾸던 영웅의 모습은 조금씩 사라져가고
자신이 점점 보잘것 없는 존재임을 하나씩 깨달아갈 무렵
태어날 때 우렁차게 울었던 그 야성은 움츠러든 어깨속에 조용히 숨어만 간다.
내가 본 남성들은 모두 야망이 있었다.
그들 모두는 속으로 으르렁 거리며,
이 세상의 한켠을 지배하고자 하는 강렬한 욕구를 가지고 있었다.
어릴수록 이러한 욕구는 거친 언행과 잦은 폭력으로 나타나지만,
점점 더 세상속에 녹아갈수록 야망은 웃음과 여유로움 속에 조용히 웅크리고 있다.
남자들에게 야망은
때로는 허황된 꿈으로
때로는 삶을 이끄는 힘으로
때로는 사랑을 향한 불타는 열정을 가져다준다.
때때로 멋진 능력을 가진 이들은
어릴적 자신이 꿈꾸던 야망을 이루어내고,
높은 절벽위의 라이언 킹 처럼 당당히 자신의 위용을 과시한다.
그들의 얼굴에는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여유와
누구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
그리고 숨겨진 더 큰 야망이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으려는 듯 조용히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내면 한켠엔 어느새 누구보다 큰 외로움과 두려움이 대신하게 된다.
그리고 그들은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이 외로움을
어릴 적 어머니같은 여성이 다시 나타나 해결해줄 수 있다고 믿게 된다.
그래서 대부분의 남성들은
어머니같이 자신을 감싸안을 수 있는 여성들에게 끌리고 만다.
물론, 남자들이 섹시하고 아름다운 여성들을 찾아 헤매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엄밀히 말해 그것은 잠깐의 쾌락을 위한 몸부림일 뿐이다.
성공한 사업가, 유명한 연예인, 세계적인 지도자일 수록
이렇듯 모성애를 자극하는 여성에게 무너져왔던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남자들은
연예 초기엔 언제나 모든 것을 챙겨줄 듯 환상을 심어주지만
그 기간이 길어지고 가까워질수록 결국 애기같은 본성을 드러내고 만다.
그래서 어떤 여성들은 언제나 강할것만 같았던 내 남자의 이런 모습을 이해하지
못하고, 혹시나 다른 이는 이렇지 않을까 하는 헛된 기대를 가지고 떠나게 된다.
그리고 얼마 전,
외과 강의에 수술복을 입고 들어오신 카리스마 가득한 교수님이 느닷없이 이런말을 던지셨다.
'수컷들은 항상 엄마같은 여성들을 찾지. 지 와이프가 그렇게 해주길 바래.
근데, 세상에 그런 여자 없어. 그거 다 환상이야. 자신의 자식이 아닌 남자에게
진정 모성애를 발휘할 수 있는 여자는 없어. 그걸 꼭 알아야 돼.'
충격적이었다.
솔직히 말해 나도.
그런 여성을 원했다.
언제나는 아니더라도, 내 야망이 꺾이고 내 본능이 무너져갈 때
조용히 나를 감싸안아줄 수 있는 그런 여성을 원했다.
이 세상의 수컷 중에 그러한 생각이 없다고 말할 수 있는 자가 있다면,
모두 위선이리라.
그런데 그 모든게 환상이라니.
대부분의 여자들이 한 두번 모성애를 보여줄 수는 있지만,
어떤 여자도 평생 그것을 유지해줄 여자는 없다는 사실.
이제는 조금 이해가 된다.
자기 자식이 아닌 이에게 모성애를 발휘하는 것도
그것을 바라는 것도
어찌보면 너무나 부자연스런 일이다.

오늘처럼 야망이 꿈틀거리며 내 외로움을 자극할땐
난 다시 '히트'를 꺼내 보곤 한다.
알파치노와 로버트 드니로의 당당함 밑에 깔려 있는 그 진한 외로움은
남성들의 슬픈 숙명을 조용히 대변해준다.
나는 앞으로의 만남에 있어 커다랐던 나의 소망을 포기하려 한다.
어떤 여자도 평생 모성애를 유지해줄 수 없다면,
그것을 바라며 헤매는 것 처럼 어리석은 일이 또 있으랴.
이런 우리의 습성을 교묘히 파악한 듯
나이가 들수록 모성애를 자극하여 유혹하는 여성들이 많아진다는데
어리석게 넘어가서도 안되겠지.
평생 그렇게 해줄 수 없다면 큰 기대만큼 실망도 커짐을 이제는 알게되었으니.
언제나 나에게 기대고 의지하여도 좋다.
나의 본능적 외로움은 숙명처럼 떠안고 살아야지.
게다가 이제는 이 녀석을 좀 컨트롤 할 수 있게 된 거 같다.
결코 정복할 순 없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