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문경에서의 마지막 밤이다. 

바람소리가 예전같지 않고, 밝고 조용한 밤들이 벌써부터 그립다. 

이렇게 자유롭게 노래하고 연주할 수 있는 공간이 다시 없는 걸 알기에, 

가능한 많은 곡들을 담으려 했지만, 서두른 까닭일까 모두 만족스럽지 못하다. 


이적의 Rain. 

7년 전 지금의 오래된 피아노를 사고 처음 연주했던 곡이다. 

몇 단계나 key를 낮추어 부르면서도 이게 뭐야 진짜. 




이곳에서 서른 살을 맞이했습니다. 

저는 이제 정말 어른이 되야할 것 같군요.

너무 즐거웠습니다. 

감사해요 모두들. 


굿바이 문경 

굿바이 산북 


2013.04.10

@ SanBuk 



:

이적- 다행이다 


이적의 'Rain'을 듣고 피아노를 시작했다면, 

'다행이다'는 내가 처음으로 피아노+노래를 시도했던 곡. 


고음불가의 이유는 밤에게로 돌리고, 내일 다시 연습해봐야겠다 

이적은 정말 천재인것 같아, 

그와 동시대를 살았다는 것만으로도. 




2013. 04.09. D-3 



:

 공보의를 마치기까지 이제 2주가 남았다. 

 잠이 오지 않아 밤새 서성이던 넓은 마당과  

 빈틈을 찾기 힘든, 별들로 가득찬 검은 하늘은 이제 모두 안.녕. 


이 소중한 시간들을 무엇과 함께 보낼까 고민하다가

먼지쌓인 피아노와 함께하기로 마음 먹었다. 


아무도 없을 때나 가끔씩 노래하며 마주했던 피아노를 

이곳에 와서는 오히려 멀리하게 되었다는 것이 후회스럽다. 

아무도 없는 곳을 희망했지만, 그곳에 오고 나서는 곧 그 사실을 잊어, 아니 잃어버렸다. 


지난 3년간 새로 배운 곡들은 없고,  피아노는 늙어 페달이 삐걱인다. 

혼자있는 시간의 마지막을 이 녀석과 함께 하기로 한 것은 나쁘지 않은 생각으로 보인다. 


오래된 첫 노래는, 산울림의 회상- 음정, 소리, 발음 모두 실망스럽지만

화면에 나타난 모습이 그대로의 나일테다. 





허무하게 끝나버린 월요일.

멀어지는 사람들, 멀어질 사람


2013. 04.01. 

Goodbye to Romance 

 

:

영화 인셉션에서 코브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 You never really remember the beginning of a dream, do you? "


이 대사는 애리어든에게 지금이 '꿈'임을 암시하는 중요한 질문이다. 

꿈의 시작이 무엇이었는지, 꿈에서 처음 본 것이 무엇이었는지 기억할 수 없다는 것은

너무 당연하면서도 놀라운 일이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현실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태어난 뒤에 첫 기억이 무엇인지 알고 있을까

어렴풋이 기억이 나더라도, 그것이 내 기억 속 인생의 시작이었는지 확신할 수 있을까


꿈도 현실도 마찬가지라면, 현실이 꿈이 아니라는 확신은 어디서 생기는걸까? 


2013.03.29.

@ SanBuk

:

NaRI 2013. 03.18.

카테고리 없음 2013. 3. 19. 00:32 |



다들 현실을 탈출하고 싶어한다 

문제는 그 대상이 바로 '현실'이라는데에 있다 

기대를 가득 안은 채 새로운 현실을 만나게 되면, 

우리는 또다시 그곳을 탈출하고 싶어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NaRI는 분명 다르다. 

이곳은 영원히 현실이 될 수 없을만큼, 

불가능하며, 어렵고, 비현실적인 목표들로 이루어져 있다. 


NaRI를 생각할 때 만큼, 가슴이 뛰고 행복했던 적이 없는 것 같다. 


그것이 가장 중요할런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지나도 현실이 될 수 없다는 것이 


2013. 03.18.

Love NaRI 

Loved 나리





:

29, 30, 31, 32

카테고리 없음 2013. 2. 26. 01:33 |


1.

나이의 압박감이 다가오는 주기가

조금씩 더 짧아지고 있다. 


32살이라는 숫자가 떠오를 때마다 20대의 마지막을 무엇으로 보냈는지 되새기게 된다. 


2.

시를 썼다 


나는 이곳에 와서 신춘문예를 알게 되었다.

수많은 당선작들을 읽었고, 어떤 것은 감탄으로 

어떤 것은 전혀 동의할 수 없는 냉소로 마주하였다.


첫 해는 곧 당선될 거 같다는 흥분으로 보냈다.

당선소감을 미리 써놓고, 전화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두번째 해는 조금 더 냉정해졌다.

되리라 기대하지 않으면 붙을 수 있다는 생각이, 스스로를 되먹이면서 

재귀순환의 모순을 만들어내곤 했다.


세번째 해에는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인내해냈다. 

여전히 예심조차 통과하지 못했지만, 글을 쓰는데에는 마지막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삶이 더 치열하고 가라앉을수록, 글을 쓰고 싶은 욕구는 커져만 간다.

하루의 가장 힘든 순간이, 역설적으로 좋은 글귀가 떠오르는 때임을 이제는 깨닫게 되었다 


3. 

논문을 썼다. 


아니, 논문을 마무리했다. 

Nature가 아니면 거들떠보지도 않던 초보 연구자에서, 

이제는 낮은 impact factor의 논문들에도 마음을 열 수 있는 평범한 연구자가 되었다. 


내가 성공하지 못했기 때문에,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의 어려움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좋은 논문은 분명 다르다. 하지만 좋은 곳에 실리지 않은 논문이라고 해서 모두 수준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 평범한 사실을 몸소 겪어야 알아차릴만큼, 나는 아직 어리석다. 



4.

사랑을 했다. 

30대의 초반에 나는 많은 사랑을 했다. 

20대의 쭈뼛거림을 보상받으려는 듯, 나는 많은 사람을 만났다.


몇몇의 사람들은 거부했으나, 

몇몇으로부터 거부의사를 받곤 했다 


싫음을 표현하는 것은 더 손쉬워졌으나

싫음을 받아들이는 것은 여전히 어렵고 낯설다. 

하지만 두가지가 모두 어려웠다면, 우리는 서로를 거부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제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두렵지 않으나, 누군가에게 익숙해지는 것이 무서워졌다. 


나는 점점 더 쉽게 흥미를 잃었고, 더 빨리 싫증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누군가에게 올인할 수 있을까. 

열정이 식어도 나는 좋은 사람일 수 있을까. 


여전히 대답은 부정적이며, 마음의 주기는 점점 더 짧아져간다. 




오늘도 나는 불면을 겪게 될 것이다.

막연한 기다림은 언제나 사람을 지치게 하고, 

실패의 이유는 변명처럼 항상 여러가지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보낸 하루이지만, 

시의 몇 문장을 고칠 수 있었다. 


그것이 지금 마음에 든다.


고요하기 끝이 없는 침대에 누워

한 편을 복기하다보면, 어느새 또 졸음이 몰려올 것이다. 


2013. 02.26. 

@ San Buk  







:

또 수술

카테고리 없음 2012. 10. 9. 21:54 |

2주전, 공보의 마지막 축구경기에서 

왼쪽 전방십자인대(ACL)가 끊어져버렸다. 

무리한 드리블을 한다싶어 방향을 바꾸는 순간, 

'딸깍'소리와 함께 무릎이 빠졌다 들어오는 느낌이란.. 


긍정은 무지에서 비롯된 것일까.

다친날 밤 나는 걷는 꿈을 꾸었는데 

통증과 느낌이 예사롭지 않았다. 

막 아프지는 않은데 무언가 미묘하게 '사라진' 느낌!! 

지금 생각해보면 ACL에 있는 위치감각수용체가 사라져서 느껴지는 eccentric한 느낌이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아무튼, 

문경에서 제일 큰 '문경제일병원'에서 1차진료와 MRI를 찍고나서 

'partial ACL and MCL tear'라는 진단을 받고 어제까지 서울성모병원 외래를 기다렸다. 

partial이라는 단어 하나 때문에 나는 2주간을 기대감으로 버틸 수 있었다. 

'수술없이도 나을 수 있을 거야' 라는. 


하지만 인용 교수님은 카리스마 넘치는 Lachmen test를 통해 단번에 ACL이 전부 나갔음을 확인시켜주셨다 

그리고 바로 수술날짜 확정 


11월 1일이다. 


뇌과학을 공부하는(했던) 나는,

전신마취가 너무나 싫다. 


매우 안전한 시술인걸 알면서도, 그냥 내가 내 자신에 대한 통제를 잃어버리는 그 순간이 너무 싫다. 


2006년 첫 전신마취 수술 때는 그 느낌이 너무 싫어 수술 전날 밤을 지새웠다. 

그 때는 응급수술이라 하루만 버티면 되었지만. 


이번에는 3주를 기다려야 한다. 

또다시 무지하지만 예측가능한 질문을 던져보고 있다. 

'전신마취에서 깨어나지 못한다면, 남은 3주간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전신마취에서 깨어나지 못할 것을 예측한 내가, 

그 일이 일어난 후에 이 글을 보고 놀랄 사람들의 반응까지 예측한다면,

그리고 다시 이 위의 문장을 보고 놀랄 반응까지 예측한다면, 

이것은 에셔와 바흐가 그토록 강조한 (그리고 호프스테더가 알려준) Recursion 이 되고 마는 것일까. 


이런 쓸데없는 생각들로 

밤새 잠을 못 이루다가, 한 가지 답을 찾아내었다.


'글을 써야겠다.'


내가 언젠가 깨어나지 못한다면, 

나는 그동안 내가 써놓은 글과 시들을 열렬히 다듬는 방법밖에 없다. 

그들만이 내가 살아있고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증언해줄 테니깐. 


2012.  10. 09. 

@San buk 






:

Once.

My SToRY 2012. 9. 4. 22:50 |


사용자 삽입 이미지

2012.09.04. 

5년만에 '원스'를 다시 보았는데, 
그 때의 얼굴, 미소와 눈물이 놀랄만큼 생생하게 떠올랐다. 

26살에 원스를 보고 울었던 청년은
31살이 되어도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나의 몸은 늙어가는데
기억과 감정은 그대로라면 

나는 늙고있는 것일까 그대로인 것일까. 

아름다움은, 내 안에 있는 것일까 주어지는 것일까. 

2007.10.14 11:35


 
  세상의
  수많은 사랑들이

  사랑할 땐 한결같이 아름답고
  소중한 느낌으로 시작되지만.
 
  세상의
  수많은 이별
 
  모두 서로 다른
  제각각의
  깊은 상처를 남기고.

  그러한 이별의 감정을
  이렇게 아름답고 현실적인 가사와
 
  아름다운 멜로디에 담아낼 수 있는 사랑은

  어떤 사랑이었을까.

  깊이 가라앉아 있던 감정을
  휘저어 띄우는 아름다운 영화

  Once.

I don`t know you
But I want you
All the more for that
Words fall through me
And always fool me
And I can`t react
And games that never amount
To more than they`re meant
Will play themselves out

Take this sinking boat and point it home
We`ve still got time
Raise your hopeful voice you have a choice
You`ve made it now

Falling slowly, eyes that know me
And I can`t go back
Moods that take me and erase me
And I`m painted black
You have suffered enough
And warred with yourself
It`s time that you won

Take this sinking boat and point it home
We`ve still got time
Raise your hopeful voice you had a choice
You`ve made it now

Falling slowly sing your melody
I`ll sing alongI don`t know you
But I want you
All the more for that
Words fall through me
And always fool me
And I can`t react
And games that never amount
To more than they`re meant
Will play themselves out

Take this sinking boat and point it home
We`ve still got time
Raise your hopeful voice you have a choice
You`ve made it now

Falling slowly, eyes that know me
And I can`t go back
Moods that take me and erase me
And I`m painted black
You have suffered enough
And warred with yourself
It`s time that you won

Take this sinking boat and point it home
We`ve still got time
Raise your hopeful voice you had a choice
You`ve made it now

Falling slowly sing your melody
I`ll sing along


:

1. 

더이상 개가 짖지 않는다

정확히 언제부터인지 알 수는 없지만. 


이곳의 밤은 

사람을 예민하게 만들만큼 고요하지만

그렇다고 마음이 평화로운 것은 아니다 


나는 몇 주일째 

지독한 불면과 싸우고 있다.


아직 마주하지 못한 미래가 

현재를 압도하고 있는 까닭이다. 


2. 

지난 한달 간을

지독한 외로움과 싸우고 있다 


주말에 아무 약속없이 거리를 서성일 때가 

가장 치열한 순간이었던 것 같다 


사람과 사랑

사랑과 대화 

대화와 접촉이 


나에게 지금 가장 필요하다. 


3. 

논문이 나왔다. 

그것도 올해에만 3편이.


1저자가 아닌것까지 합치면 올해에만 8편이 생겨버렸다.


이것은 매우 놀라운 일인데,

내가 드디어 이력서에 8줄을 적을 수 있게 되었을 뿐 아니라,

지난 5년간 아무도 알아주지 않은 채, 연구와 논문에 매달린 시간들을 

이제 '부끄럽게나마' 증명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정식학위과정을 밟지 않았기 때문에

무엇보다 이러한 '결과'가 필요했다.

논문이 나오지 않으면, 지난 5년의 노력을 증명할 길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 그다지 기쁘지 않다

오히려 하루는 더 지루해지고, 일상은 더 단조로워졌으며

혼자있는 시간은 더욱더 힘들어져만 간다


집중할 무언가가 필요하다.

그것이 사람이어야만 

할 시간이

왔다. 


2012. 08.19.

@ San-buk



:

1.

개가 짖는다 

밤이 깊어지면 어김없이 

집 앞 작은 밭을 지키는 개 한마리가 무섭게 짖어댄다 


처음에는 사람을 보고 짖는다 생각했지만 

이곳은 9시만 넘어도 지나는 이가 없는 곳이다. 


달을 보고 짖는 것도 아니다. 

달은 지금 구름에 가려 

개의 시선 반대쪽으로 흘러가고 있다.  


관사 위의 깃발들이 펄럭이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오늘같이 바람이 잠잠한 날에도 녀석은 끊임없이 짖고 또 짖는다 


2.

가만히 귀를 기울여보니 

개가 짖은 후 1~2초 후에 멀리서 다른 개가 응답하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이거야! 

이 녀석은 누군가와 대화를 하고 싶었던 것이군! 


하지만 

제 소리가 산에 부딪혀 오는 메아리임을 

누렁이도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 


3.

나의 잠을 깨우는 얄미운 녀석에게

돌을 하나 집어 던지려다가 문득, 


1년이 지나 이곳을 떠나면, 네가 그리워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얼굴을 보지는 못했지만, 커다란 울음소리에 나는 이미 익숙해져 있었다 


4.

나는 어렸을 적부터 현재가 몇 초인지 참 궁금했다.

나는 과연 몇 초를 현재로 인식하며 살고 있는 것일까? 

이 작은 질문이 31살의 나를 아직도 과학의 깊은 바닥에서 놓아주지 않고 있다. 


5.

우리는, 우리가 잊혀지지 않을만큼만을

현재로 인식하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느덧 익숙해진 개 짖는 소리도, 간간히 나를 깨우며 '현재'를 알려주고 

깃발의 펄럭이는 소리도, 잊혀지지만 하면 다시 귓가를 맴돈다. 


어쩌면 내가 느끼는 현재는,

잊어비리려는 내부의 나와, 잊혀지지않기 위해 노력하는 외부의 것들의 싸움에서 비롯되는지도 모르겠다 


애써 잠이 든 순간에도, 나는 잊혀지지않기 위해 꿈을 꾸고 있다. 


아무 것도 나타나지않은 아직까지도. 


2012. 06. 01. 00:01 @ San-b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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