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이의 압박감이 다가오는 주기가
조금씩 더 짧아지고 있다.
32살이라는 숫자가 떠오를 때마다 20대의 마지막을 무엇으로 보냈는지 되새기게 된다.
2.
시를 썼다
나는 이곳에 와서 신춘문예를 알게 되었다.
수많은 당선작들을 읽었고, 어떤 것은 감탄으로
어떤 것은 전혀 동의할 수 없는 냉소로 마주하였다.
첫 해는 곧 당선될 거 같다는 흥분으로 보냈다.
당선소감을 미리 써놓고, 전화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두번째 해는 조금 더 냉정해졌다.
되리라 기대하지 않으면 붙을 수 있다는 생각이, 스스로를 되먹이면서
재귀순환의 모순을 만들어내곤 했다.
세번째 해에는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인내해냈다.
여전히 예심조차 통과하지 못했지만, 글을 쓰는데에는 마지막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삶이 더 치열하고 가라앉을수록, 글을 쓰고 싶은 욕구는 커져만 간다.
하루의 가장 힘든 순간이, 역설적으로 좋은 글귀가 떠오르는 때임을 이제는 깨닫게 되었다
3.
논문을 썼다.
아니, 논문을 마무리했다.
Nature가 아니면 거들떠보지도 않던 초보 연구자에서,
이제는 낮은 impact factor의 논문들에도 마음을 열 수 있는 평범한 연구자가 되었다.
내가 성공하지 못했기 때문에,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의 어려움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좋은 논문은 분명 다르다. 하지만 좋은 곳에 실리지 않은 논문이라고 해서 모두 수준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 평범한 사실을 몸소 겪어야 알아차릴만큼, 나는 아직 어리석다.
4.
사랑을 했다.
30대의 초반에 나는 많은 사랑을 했다.
20대의 쭈뼛거림을 보상받으려는 듯, 나는 많은 사람을 만났다.
몇몇의 사람들은 거부했으나,
몇몇으로부터 거부의사를 받곤 했다
싫음을 표현하는 것은 더 손쉬워졌으나
싫음을 받아들이는 것은 여전히 어렵고 낯설다.
하지만 두가지가 모두 어려웠다면, 우리는 서로를 거부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제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두렵지 않으나, 누군가에게 익숙해지는 것이 무서워졌다.
나는 점점 더 쉽게 흥미를 잃었고, 더 빨리 싫증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누군가에게 올인할 수 있을까.
열정이 식어도 나는 좋은 사람일 수 있을까.
여전히 대답은 부정적이며, 마음의 주기는 점점 더 짧아져간다.
오늘도 나는 불면을 겪게 될 것이다.
막연한 기다림은 언제나 사람을 지치게 하고,
실패의 이유는 변명처럼 항상 여러가지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보낸 하루이지만,
시의 몇 문장을 고칠 수 있었다.
그것이 지금 마음에 든다.
고요하기 끝이 없는 침대에 누워
한 편을 복기하다보면, 어느새 또 졸음이 몰려올 것이다.
2013. 02.26.
@ San Bu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