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jihoon 2008. 8. 9. 01:19
끝이 없는 블랙홀처럼 보였다.

마치 한없는 욕망을 드러내기라도 하듯이, 뇌는 우리가 사용하는 에너지의 20%를 혼자서 집어 삼키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매 순간 수 백개의 근육을 움직인다. 사람들과 대화하고 길을 걸을때 뿐만 아니라 가만히 앉아 티비를 보는 순간에도 우리의 심장은 힘차게 뛰고, 위와 장은 바삐 움직인다. 또한 우리는 언제나 36.5도의 열을 만들어내고 있다. 영하 10도의 매서운 바람 속에서도 우리는 몸을 덥히기 위해 엄청난 에너지를 소비한다. 그리고 잘 느껴지지 않지만, 우리의 몸은 수많은 물질들을 만들어내고 사용하며, 하루에도 몇 리터나 되는 침과 소화액을 만들기 위해 분주하다.

그런데 뇌는 그렇지 않았다.

남들처럼 바삐 움직이지도 않고 여러 물질을 만들어내는 것도 아닌데, 그저 조용히 앉아있으면서도  엄청난 에너지를 사용하고 있었다. 마치 남몰래 무엇인가를 꾸미고 있는 듯이, 몸무게의 3%도 차지하지 못하는 우리의 뇌는 조용히 20%의 몫을 갈망하고 있었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 그토록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한 것일까.

단지 효율이 떨어져서 였을까? 아직 인간이 만든 그 어떤 기관도 인체의 그 어느 부분보다 효율적이지 못하다. 1리터로 1000km를 간다는 세계 최고의 실험자동차도 세포 속 작은 미토콘드리아보다 열효율이 높지 않다.  따라서 우리 몸의 정점에 있는 뇌가 단지 비효율적이서 그렇게 에너지를 낭비할리는 없었다.

아니면, 우리 몸의 모든 부분을 컨트롤 해야 하니 당연히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한 것이 아닐까?
질문은 그렇게 쉬운 답을 원한 것이 아니었다. 단지 우리 몸의 여러 기관에 명령을 내리기 위한 활동만으로는 이렇게까지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지 않다. 뇌가 우리 몸의 모든 부분을 컨트롤하는 것은 뇌가 활동한 것의 결과일 뿐이고 그 이상을 말해주지는 못한다.

분명,
우리가 모르는 것이 있었다.

빛마저 삼켜버려 바라볼 수 없는 블랙홀처럼, 내 자신이 나 자신을 바라봐야 하는 뇌는 분명 끝이 없어 보였다.

놀랍게도 아직 아무도 뇌가 매 순간 무슨 일을 그리 바쁘게 하고 있는지 모르고 있다. 뇌를 구성하는 세포들은 무엇을 위해 매 순간 그렇게 많은 포도당을 필요로 하는지 우리는 아직 전혀 모르고 있다. 마치 수천 개의 퍼즐을 맞춰야 하는데, 퍼즐 상자 앞면에 전체 그림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 상황이다. 이 퍼즐들을 다 맞추면 어떤 그림이 될지 아무도 모른채, 그냥 한 개의 퍼즐이 다른 퍼즐과 조금 더 잘 맞을 것 같다는 이야기들만 하고 있었다.

결국 아직까지 우리에겐 뇌에 대한 큰 그림이 없었다.

그리고 그것이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

우뇌가 좌뇌보다 감성적이라거나, 전두엽이 인격을 담당한다는 등의 이야기는 우리를 너무 지엽적이고 지루한 존재로 느껴지게 한다. 뇌는 그렇게 분절되고 고루하지 않으며,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활발하고 다양하게 움직인다. 최신 뇌과학의 연구들은 분명 그보다 더 다양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컴퓨터의 CPU는 실로 많은 일을 한다. 우리가 단순히 영화를 감상하기 위해 마우스를 클릭하는 그 짧은 순간, CPU는 흩어진 파일들의 주소를 불러모아 한데 모으고, 수 백만개의 점으로 이루어진 화면 각각이 무슨 색을 나타내야 할지 계산한다. 그리고 각종 암호들로 압축되어 있는 정보를  풀어내기 위해 엄청난 양의 계산을 해야 한다. 우리가 하루에 8시간씩 꼬박 20년을 계산해도 다 하지 못할 양의 일을 CPU는 단지 1초 이내에 말없이 해낸다. 마치 커다란 신문지를 구겨서 손 안에 집어 넣듯이, CPU는 그 짧은 시간 속에 상상 이상의 시간을 구겨놓고 조용히 다음 일로 넘어간다. 컴퓨터는  그렇게 많은 일을 하고 있지만, 우리는 그저 편안히 영화를 감상하기만 하면 된다.

뇌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주변을 바라보고 인식하는 이 순간, 몇 가지 간단한 일들만 일어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눈 앞의 풍경은 그저 보일뿐이며, 주변 사람들의 대화소리 역시 끊기지 않고 잘 들릴 뿐이다. ‘사랑해’라는 말을 하기 위한 그 짧은 순간에도 20여개가 넘는 근육들이 아주 조화롭게 수축하고 늘어나며 소리를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세부적인 것은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 그저 말하고 싶었을 뿐이고, 자연스럽게 말이 나왔을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뇌가 실로 많은 일들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쉽게 알아채지 못한다. 단 1초의 순간동안 우리의 뇌가 해야하는 일들을 상세히 열거해보면 우주가 얼마나 넓은지 깨닫는 것만큼이나 놀라게 될 것이다.

이 책은 바로 이러한 놀라움에서 시작되었다.




사랑 두려움 행복과 슬픔 믿음 아픔

그리고 우리 자신에 대한 큰 그림.

이렇게 우리의 감정은 뇌과학을 만났다.

2008. 08. 08 감정, 뇌과학을 만나다.
Epilogue 0.1 by Jihoon O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