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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수술

ojihoon 2012. 10. 9. 21:54

2주전, 공보의 마지막 축구경기에서 

왼쪽 전방십자인대(ACL)가 끊어져버렸다. 

무리한 드리블을 한다싶어 방향을 바꾸는 순간, 

'딸깍'소리와 함께 무릎이 빠졌다 들어오는 느낌이란.. 


긍정은 무지에서 비롯된 것일까.

다친날 밤 나는 걷는 꿈을 꾸었는데 

통증과 느낌이 예사롭지 않았다. 

막 아프지는 않은데 무언가 미묘하게 '사라진' 느낌!! 

지금 생각해보면 ACL에 있는 위치감각수용체가 사라져서 느껴지는 eccentric한 느낌이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아무튼, 

문경에서 제일 큰 '문경제일병원'에서 1차진료와 MRI를 찍고나서 

'partial ACL and MCL tear'라는 진단을 받고 어제까지 서울성모병원 외래를 기다렸다. 

partial이라는 단어 하나 때문에 나는 2주간을 기대감으로 버틸 수 있었다. 

'수술없이도 나을 수 있을 거야' 라는. 


하지만 인용 교수님은 카리스마 넘치는 Lachmen test를 통해 단번에 ACL이 전부 나갔음을 확인시켜주셨다 

그리고 바로 수술날짜 확정 


11월 1일이다. 


뇌과학을 공부하는(했던) 나는,

전신마취가 너무나 싫다. 


매우 안전한 시술인걸 알면서도, 그냥 내가 내 자신에 대한 통제를 잃어버리는 그 순간이 너무 싫다. 


2006년 첫 전신마취 수술 때는 그 느낌이 너무 싫어 수술 전날 밤을 지새웠다. 

그 때는 응급수술이라 하루만 버티면 되었지만. 


이번에는 3주를 기다려야 한다. 

또다시 무지하지만 예측가능한 질문을 던져보고 있다. 

'전신마취에서 깨어나지 못한다면, 남은 3주간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전신마취에서 깨어나지 못할 것을 예측한 내가, 

그 일이 일어난 후에 이 글을 보고 놀랄 사람들의 반응까지 예측한다면,

그리고 다시 이 위의 문장을 보고 놀랄 반응까지 예측한다면, 

이것은 에셔와 바흐가 그토록 강조한 (그리고 호프스테더가 알려준) Recursion 이 되고 마는 것일까. 


이런 쓸데없는 생각들로 

밤새 잠을 못 이루다가, 한 가지 답을 찾아내었다.


'글을 써야겠다.'


내가 언젠가 깨어나지 못한다면, 

나는 그동안 내가 써놓은 글과 시들을 열렬히 다듬는 방법밖에 없다. 

그들만이 내가 살아있고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증언해줄 테니깐. 


2012.  10. 09. 

@San buk